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romantic/piece of sensibility

16_07_27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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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히가시노 게이고, '나미야 잡화점의 기적', p.446-447]

 

 

 

봉투 앞면에 만년필로 '이름 없는 분에게'라고 적혀 있었다. 상당한 달필이다. 봉투 안에서 편지지를 빼냈다.

 

 

이 편지는 백지를 보내주신 분께 드리는 것입니다. 해당되지 않는 분은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으시기 바랍니다.

 

 

아쓰야는 헉하고 숨을 삼켰다. 조금 전에 아무것도 쓰지 않은 빈 편지지를 가게 앞 셔터 우편함에 넣었다. 그렇다면 이 편지는 그에 대한 답장이다. 리고 답장을 써준 사람은 진짜 나미야 잡화점 할아버지다.

 

  편지글은 다음과 같이 이어졌다.

 

 

이름 없는 분에게.

어렵게 백지에 편지를 보내신 이유를 내 나름대로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. 이건 어지간히 중대한 사안인 게 틀림없다, 어설피 섣부른 답장을 써서는 안 되겠다, 하고 생각한 참입니다.

늙어 망령이 난 머리를 채찍질해가며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 결과, 이것은 지도地圖가 없다는 뜻이라고 내 나름대로 해석해봤습니다.

나에게 상담을 하시는 분들을 길 잃은 아이로 비유한다면 대부분의 경우, 지도를 갖고 있는데 그걸 보려고 하지 않거나 혹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.

하지만 아마 당신은 그 둘 중 어느 쪽도 아닌 것 같군요. 당신의 지도는 아직 백지인 것입니다. 그래서 목적지를 정하려고 해도 길이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일 것입니다. 지도가 백지라면 난감해하는 것은 당연합니다. 누구라도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겠지요.

하지만 보는 방식을 달리해봅시다.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.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.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. 이것은 멋진 일입니다. 부디 스스로를 믿고 인생을 여한 없이 활활 피워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.

상담 편지에 답장을 쓰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. 마지막으로 멋진 난문難問을 보내주신 점, 깊이 감사드립니다.

 

        나미야 잡화점 드림

 

 

 

편지를 다 읽고 아쓰야는 고개를 들었다. 두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. 모두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.

자신의 눈빛도 틀림없이 그럴 거라고 아쓰야는 생각했다.

 

 

 

-

 

 

 

누군가에게는 뻔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는 내용이지만, 적어도 나에게는 참 많이 위로가 됐다.

사실 책 읽으면서 우는 일이 자주 있긴 한데, 꺼이꺼이 울면서 책 읽은 건 꽤 오랜만.

 

위에 적어 놓은 내용은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인데, '아쓰야'를 비롯한 세 인물의 상황을 생각하면

아마 저들에게도 꽤나 위로가 되기도 하고, 저들의 인생에 있어서 도전이 되는 편지일 거라고 생각했다.

그리고 그것을 나도 동일하게 느낀 것 같다.

 

저 세 친구의 상황과는 나의 상황이 모양 자체는 크게 다르다고 하지만

길을 잃고 막막하게 ─ 말 그대로 '백지 지도'를 들고 ─ 살아간다는 점에서는 오히려 비슷한 상황이다.

곧 나오게 될 '결과'로 앞으로 나는 다른 길을 선택해야 할지, 아니면 다시 터널 안으로 들어가 할지,

벌써부터 숨이 턱턱 막히고 겁이 나기도 하고, 너무 늦은 건 아닌지, 더이상 길이 없어진 건 아닌지 두렵지만,

 

 

나도 내 삶이,

 

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 수 있다고, 자유롭고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, 생각하면서

다시 잘 버텨낼 수 있기를, 그리고 머지 않아 나의 인생을 활활 피울 수 있기를 바란다.

 

 

 

* BGM| 同じ空をみている(같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어) - Kaido Shogo (일드 '늦게피는해바라기' OST)

 

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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